5월은 푸르구나아아새 창 열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난스러운스라소니43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6-08-02 19:58

본문

송염. ​1 序宋艷 清 徐士鑾2 宋艷提要3 清天津徐士鑾撰,凡十二卷。舉南北宋婢妾倡伎之事,沿世說新語例,區三十六門,分類編次,顏曰宋艷。匪直引人入勝,蓋亦名實相符耳。篇中麗以歷朝掌故,或先正格言,義存勸懲,煞費婆心。迥非麗情集、婦人集等所能抗行也。談趙宋一代艷史者,當推此書為驪淵矣。4 宋艷題辭5 摘艷紛披碎錦叢,幾多白白與紅紅。一言括盡詩三百,不出無邪兩字中。6 宋史高標道學名,風流天子卻多情。安安唐與師師李,盡得承恩入禁城。風流道學,千古竟難其人7 樂既不淫哀不傷,關雎好色亦何妨。眼中有艷心無艷,任爾常窺宋玉牆。8 色界茫茫結淨因,須彌破後一微塵。笑他欲障鳩羅什,只把吞針駭世人。9 我夢游仙恨不真,胡麻飯熟幾經春。開編笑語霞城守,阮肇劉晨是部民。君舊守台州,天台仙子或亦望北鶴10 貞淫正變盡師資,一片婆心托艷辭。君是南朝徐孝穆,閒情應續玉台詩。陵有玉台新詠序11 光緒辛卯子月上浣 樂亭史夢蘭香崖題12 宋艷序13 吾人編輯一書,必義存勸戒,方可問世。第先賢語錄,直接心傳,而讀古者或不終篇,輒置之。置之不讀,雖家置一編,其如未嘗一寓目何?是知強以所不欲觀,不若姑即情之所近以引之,如孟子進齊君以王政,好貨好色豈王政哉,孟子不斥其所好之非,而貨也色也,王政即於是乎在,此真善於勸戒者矣。徐子沅青以所輯宋艷十二卷請序,其事雖不外情欲之私,而或自致之,或非自致之,一念之邪正,如黑與白不相假。使閱之者時則懍若神明,時則視同犬彘,因以作其剛方之氣,激其羞惡之良。人非下愚,皆知自好,而漠然不動於中者其誰?且所以致夫情欲者,其人特出於婢妾倡伎,初無談人閨閫之嫌,其用意實有足多者。以視世所傳婦人集、麗情集、小名錄等書,未可同日語矣。抑又思之,沅青精力未衰,而世局又正多隱憂,若能充其精力於往籍所載一切長駕遠馭之雄圖,與夫應變沉機之偉略,其有可取以宏濟時艱、挽回劫運者,更匯而編輯之,質之當世,以待其人,是則餘之厚望也夫! 光緒辛卯秋八月友生楊光儀香吟氏序14 序二15 且夫一代之文,興一代之事,皆一代之風氣所關。自宋儒高談性理、聚徒講誦,動累千百萬言,其間闡明經訓,雖系人心風俗之大,固自萬古不磨;而清淨寂滅、遁於虛無者,亦所在多有。至細而極之,妾伎可傳之事,愚夫愚婦聞之或泣或歌,尤講學家所不欲言,而亦不願言者,懼其褻也,懼其不足傳也。然而魁儒碩彥,搜求一代文獻,大者勒之史乘、垂之方策,懿鑠今古,一無所遺;小者慮其散佚,多籍私家紀載而傳之。若夫取裁一代,編次一書,義關勸懲而說不腐,事屬情欲而旨不纖,則美惡相形,亦自有可以興、可以觀者。吾宗沅青太守,息居里門,纂輯宋艷一書,沿世說新語例,分門別類,悉寓箴規,是匪惟感發中材,即士夫慧業靈心,亦足懲其逸志。沅青守台郡,極有政聲,士人至今頌之。今積歲手錄成編,尚不忘人心風俗之系;且詳人所略,不使一代掌故湮而弗傳,誠有心世道者。彼一麾數年即摭拾政事裒然成書,持為欺飾後人之具,其存心又豈可同日語哉?是為序。光緒癸巳仲冬之月上浣宗弟郙序16 引17 餘自旋里後,杜門卻掃,日手一編,借以攝心息慮,曾輯《醫方叢話》八卷付梓。餘性善忘,而閱過輒不記憶,因於書中可驚可喜之事隨手錄之,或同一事而紀述互異,亦並錄之;其與彼事有辨論有佐証,與夫引用故實之可考核者,亦附錄之。至若載籍中箴語格言,餘尤喜其得以自警也。歲月既久,手錄積多,爰規《世說新語》例,分門三十有六,將所錄南北宋事逐類排次。雖事故限以婢妾倡伎,然各有緣由,固可區分。即於各類所載後,或附以歷朝事實,或系以先正法言,其間雖片語單詞,皆有所本,要非鄙人妄逞臆說也。此書凡三易稿,見者僉謂有關勸懲,慫恿鏤板。餘以所輯盡宋事也,即以《宋艷》名,蓋欲引人觀覽云爾。光緒辛卯荷月徐士鑾識18 卷一 端方 德義 耿直 警悟 慚悔 遏絕19 卷二 瑕纇 間隙 懊惱 窘辱20 卷三 苦累 患害 忿激 矜詡21 卷四 逸豫 紕繆 詭譎22 卷五 狹邪 佻薄 狂妄23 卷六 卑污 狎暱24 卷七 嬉戲 譏誚 愛慕25 卷八 感戚 惑溺 侈縱26 卷九 僭竊 殘暴 覆亡27 卷十 果報 奇異28 卷十一 駁辨 傅會29 卷十二 叢雜​제공해주신 지침에 따라 원문의 요약, 생략, 재구성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완역하였습니다. 원문에 포함된 편저자의 주석(작은 글씨 등)은 본문 내에 괄호로 묶어 그대로 번역하였으며, 번역 외의 설명이나 주석은 본문에 삽입하지 않고 맨 마지막에 별도 섹션으로 분리하였습니다.​---​# 송염(宋艷) -&gt서(序)​**1 서 송염 청 서사란**송염 서문, 청나라 서사란(徐士鑾) 지음.​**2 송염제요**송염 제요(개요).​**3 청천진서사란찬, 범십이권. 거남북송비첩창기지사, 연세설신어례, 구삼십육문, 분류편차, 안왈송염. 비직인인입승, 개역명실상부이. 편중려이역조장고, 혹선정격언, 의존권징, 살비파심. 형비려정집, 부인집등소능항행야. 담조송일대염사자, 당추차서위려연의.**청나라 천진(天津)의 서사란이 찬술하였으며, 모두 12권이다. 남송과 북송의 비첩(婢妾, 여종과 첩) 및 창기(倡伎, 기생)의 일을 열거하여,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예에 따라 36문(門)으로 나누고 분류하여 엮은 뒤, 이름을 《송염(宋艷)》이라 하였다. 단순히 사람을 흥미로운 곳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대개 명칭과 실상이 서로 부합한다. 책 속의 글은 역대 왕조의 장고(掌故, 제도와 일화)로써 화려하게 꾸미거나 혹은 옛 현인의 격언을 수록하여 권선징악의 뜻을 보존하였으니, 자애로운 마음(婆心)을 몹시 쏟았다. 《려정집(麗情集)》이나 《부인집(婦人集)》 등의 책이 감히 대항할 수 있는 바가 전혀 아니다. 조송(趙宋, 송나라) 일대의 염사(艷史, 로맨스나 야사)를 말하는 자는 마땅히 이 책을 보물 창고(驪淵)로 추대해야 할 것이다.​**4 송염제사**송염 제사(시로 쓴 발문).​**5 적염분피쇄금총, 기다백백여홍홍. 일언괄진시삼백, 불출무사량자중.**아름다움을 뽑아내어 어지러이 펼치니 부서진 비단 더미 같고, 수많은 흰 꽃과 붉은 꽃들이 가득하네. 한마디 말로 《시경》 삼백 편을 모두 포괄하니, 생각에 사양이 없다(無邪)는 두 글자 속을 벗어나지 않네.​**6 송사고표도학명, 풍류천자각다정. 안안당여사사리, 진득승은입금성. 풍류도학, 천고경난기인**송나라 역사는 도학(道學)의 명성을 높이 표방했으나, 풍류 천자는 도리어 다정하였네. 당안안(唐安安)과 이사사(李師師)가 모두 은혜를 입어 궁궐(禁城)로 들어갔구나. (풍류와 도학을 겸비함은 천고에 끝내 그 사람을 찾기 어렵다.)​**7 낙기불음애불상, 관저하색역하방. 안중유염심무염, 임이상규송옥장.**즐거우면서도 음탕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상심하지 않으니, 《관저(關雎)》의 여색을 좋아함이 또한 무슨 해가 되랴. 눈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되 마음속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욕)이 없으니, 그대가 언제나 송옥(宋玉)의 담장을 엿보아도 상관없으리라.​**8 색계망망결정인, 수미파후일미진. 소타욕장구라십, 지파삼침해세인.**색계(色界)가 아득하나 깨끗한 인연을 맺었으니, 수미산이 부서진 뒤의 한 톨 미진이로다. 애욕의 장애를 겪은 구마라습(鳩摩羅什)을 비웃노니, 다만 바늘을 삼키는 법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뿐이네.​**9 아몽유선한불진, 호마반숙기경춘. 개편소어하성수, 원조류신시부민. 군구수태주, 천태선자혹역망북학**내가 꿈속에 신선과 노닌 것이 참되지 못함이 한스러운데, 호마반(胡麻飯)이 익은 지는 몇 해나 지났는가. 책을 펼쳐 들고 하성(霞城)의 태수에게 웃으며 말하노니, 원조(阮肇)와 유신(劉晨)이 다 그대 고을의 백성이로다. (그대는 예전에 태주(台州)를 지켰으니, 천태산의 신선이 혹시 또한 북쪽을 바라보며 학을 기다릴 것이다.)​**10 정음정변진사자, 일편파심탁염사. 군시남조서효묵, 한정응속옥대시. 릉유옥대신영서**곧음과 음탕함, 바름과 변칙이 모두 스승과 귀감이 되니, 한 조각 자애로운 마음을 아름다운 글(艷辭)에 기탁하였네. 그대는 남조(南朝)의 서효묵(徐孝穆)과 같으니, 한가로운 정취로 마땅히 《옥대신영》의 시를 이어야 하리라. (서릉(徐陵)은 《옥대신영》의 서문을 지었다.)​**11 광서신묘자월상환 낙정사몽란향애제**광서(光緒) 신묘년(1891년) 자월(子月, 음력 11월) 상순, 낙정(樂亭)의 사몽란(史夢蘭) 향애(香崖)가 짓다.​**12 송염서**송염 서문.​**13 오인편집일서, 필의존권계, 방가문세. 제선현어록, 직접심전, 이독고자혹불종편, 첩치지. 치지부독, 수가지일편, 기여미상일우목하? 시지강이소불욕관, 불약고즉정지소근이인지, 여맹자진제군이왕정, 호화호색기왕정재, 맹자불척기소호지비, 이화야색야, 왕정즉어시호재, 차진선어권계자의. 서자원청이소집송염십이권청서, 기사수불외정욕지사, 혹자지지, 혹비자지지, 일념지사정, 여흑여백불상가. 사열지자시칙름약신명, 시칙시동견체, 인이작기강방지기, 격기수오지량. 인비하우, 개지자호, 이막연부동어중자기수? 차소이치부정욕자, 기인특출어비첩창기, 초무담인규곤지혐, 기용의실유족다자. 이시세소전부인집, 려정집, 소명록등서, 미가동일어의. 억우사지, 원청정력미쇠, 이세국우정다은우, 약능충기정력어왕적소재일체장가원어지웅도, 여부응변침기지위략, 기유가취이굉제시간, 완회겁운자, 경회이편집지, 질지당세, 이대기인, 시칙여지후망야부! 광서신묘추팔월우생양광의향음씨서**우리들이 한 권의 책을 편집할 때는 반드시 권선징악과 경계의 뜻이 보존되어 있어야 비로소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다만 선현들의 어록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전해지는 것이나, 옛글을 읽는 자들이 혹 책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문득 덮어두곤 한다. 덮어두고 읽지 않는다면 비록 집집마다 한 권씩 비치해 둔들, 아직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로써 보건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보게 하는 것은, 잠시 감정이 친근하게 느끼는 바에 나아가 그것으로써 이끄는 것만 못하다. 이는 맹자(孟子)가 제나라 임금에게 왕도 정치(王政)를 권할 때,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이 어찌 왕도 정치이겠는가마는, 맹자는 그가 좋아하는 바의 잘못을 배척하지 않고 재물이며 여색이 있는 바로 그곳에 왕도 정치가 존재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참으로 권계(勸戒)를 잘하는 것이다.​서자(徐子) 원청(沅青, 서사란의 자)이 자신이 엮은 《송염》 12권을 가지고 서문을 청해왔는데, 그 일들이 비록 정욕의 사사로움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혹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도 있고 혹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 것도 있어, 한 생각의 사악함과 바름이 마치 검은색과 흰색처럼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 이것을 읽는 자로 하여금 때로는 신명을 대하듯 두려워하게 하고, 때로는 개나 돼지처럼 보게 하여, 이로써 그 강직하고 바른 기운을 진작시키고 그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양심(羞惡之良)을 격발하게 한다. 사람이 아주 어리석은 자(下愚)가 아니라면 모두 스스로를 아낄 줄 알 것이니, 마음속에 덤덤하여 아무런 감동이 없을 자가 그 누구이겠는가? 게다가 그 정욕을 일으키는 바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이 특별히 비첩과 창기에서 나왔으므로, 애초에 남의 규방 일을 이야기한다는 혐의가 없으니, 그 의도가 실로 가상한 점이 많다. 세상에 전해지는 《부인집》, 《려정집》, 《소명록(小名錄)》 등의 책과 비교해 보면 같은 날에 대고 말할 수 없다(비교가 되지 않는다).​또한 생각해보니, 원청은 정력이 아직 쇠하지 않았고 세상 형국은 또 마침 은밀한 근심이 많으니, 만약 그 정력을 과거의 서적에 기재된 일체의 멀리까지 제어하고 다스리는 영웅적인 도략(長駕遠馭之雄圖)과, 변화에 대처하고 기밀을 가라앉히는 위대한 지략(應變沉機之偉略)에 쏟을 수 있다면, 그중에서 시국이 처한 어려움을 넓게 구제하고 닥쳐온 재앙의 운수를 되돌릴 만한 것을 취하여 다시 모으고 편집하여 당세에 바탕을 두고 그러한 인물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곧 나의 두터운 소망이로다!​광서 신묘년 가을 8월, 벗 양광의(楊光儀) 향음씨(香吟氏)가 서문을 쓰다.​**14 서이**서문 두 번째.​**15 차부일대지문, 흥일대지사, 개일대지풍기소관. 자송유고담성리, 취도강송, 동루천백만언, 기간천명경훈, 수계인심풍속지대, 고자만고불마이청정적멸, 둔어허무자, 역소재다유. 지세이극지, 첩기가전지사, 우부우부문지혹읍혹가, 우강학가소불욕언, 이역불원언자, 구기설야, 구기부족전야. 연이괴유석언, 수구일대문헌, 대자륵지사승, 수지방책, 의삭금고, 일무소유소자려기산일, 다적사가기재이전지. 약부취재일대, 편차일서, 의관권징이설불부, 사속정욕이지불섬, 칙미악상형, 역자유가이흥, 가이관자. 오종원청태수, 식거리문, 찬집송염일서, 연세설신어례, 분문분류, 신우잠규, 시비유감발중재, 즉사부혜업령심, 역족징기일지. 원청수태군, 극유정성, 사인지금송지. 금적세수록성편, 상불망인심풍속지계차상인소략, 불사일대장고인이불전, 성유심세도자. 피일휘수년즉척습정사부연성서, 지위기식후인지구, 기존심우기가동일어재? 시위서. 광서계사중동지월상환 종제부서**대저 한 시대의 문장은 한 시대의 일을 일으키니, 모두 한 시대의 풍기와 관계된 것이다. 송나라 유학자들이 성명(性命)과 의리(義理)를 고상하게 담론하고 무리를 모아 외우고 강의하면서 동사(動)로 수천만 말을 누적시켰는데, 그 사이에 경전의 교훈을 밝혀낸 것은 비록 인심과 풍속의 중대함에 관계되어 진실로 만고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나, 청정(清淨)과 적멸(寂滅)로 치우쳐 허무함으로 숨어버린 것 또한 도처에 많이 있다. 지극히 세밀한 지점에 이르러서는 첩과 기생의 전할 만한 일들이라, 어리석은 사내와 어리석은 여인들이 이를 들으면 혹은 울고 혹은 노래하니, 더욱이 강학(講學)하는 학자들이 말하고자 하지 않는 바이며 또한 말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니, 그것이 추잡할까 두려워하고 그것이 전하기에 부족할까 두려워해서이다.​그러나 훌륭한 유학자와 큰 선비들이 한 시대의 문헌을 찾아 구하여, 큰 것은 역사책에 기록하고 서책에 드리워 고금에 아름답고 빛나게 하여 하나도 빠뜨림이 없게 하였고, 작은 것은 흩어져 없어질까 염려하여 많은 사가(私家)의 기재에 의탁하여 전하였다. 한 시대에서 재료를 취하고 한 권의 책으로 엮음에 있어, 의도가 권선징악에 관계되면서도 논설이 고리타분하지 않고, 일이 정욕에 속하면서도 취지가 난잡하지 않다면, 아름다움과 악함이 서로 형태를 이루어 또한 스스로 감흥을 일으킬 수 있고 살펴볼 수 있는 바가 있게 된다.​우리 문중의 원청 태수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면서 《송염》이라는 한 권의 책을 찬집하였는데, 《세설신어》의 예에 따라 부문과 분류를 나누고 모두 경계하는 규칙을 붙여두었으니, 이는 비록 보통의 재능을 가진 이(중재)들을 감동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곧 사대부들의 지혜로운 업과 영민한 마음에도 또한 그 안일한 뜻을 징계하기에 충분하다. 원청이 태주(台郡)를 지킬 때 지극히 정치적 명성이 있어서 선비들이 지금까지도 그를 칭송한다. 이제 여러 해 동안 손으로 기록하여 책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인심과 풍속에 관계됨을 잊지 않았고, 또 남들이 생략하는 바를 상세히 하여 한 시대의 장고가 인멸되어 전해지지 않게 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세상 도리에 마음을 둔 자이다. 저 깃발을 한번 휘두르며 수년 동안 정사를 대강 주워 모아 번듯하게 책으로 엮어놓고는 후대 사람들을 속이고 꾸미는 도구로 삼는 자들과 비교해 볼 때, 그 마음을 어찌 같은 날에 대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에 서문을 쓴다.​광서 계사년(1893년) 중동(仲冬, 음력 11월) 상순, 종제(宗弟) 부(郙)가 쓰다.​**16 인**인(引, 머리말).​**17 여자선리후, 두문각소, 일수일편, 차이섭심식려, 증집《의방총화》팔권부재. 여성선망, 이열과첩불기억, 인어서중가경가희지사수수록지, 혹동일사이기술상이, 역병록지기여피사유변론유좌증, 여부인용고실지가고핵자, 역부록지. 지약재적중잠어격언, 여우희기득이자경야. 세월기구, 수록적다, 원규《세설신어》례, 분문삼십유육, 장소록남북송사축류배차. 수사고한이비첩창기, 연각유연유, 고가구분. 즉어각류소재후, 혹부이역조사실, 혹계이선정법언, 기간수편어단사, 개소유본, 요비비인망정억설야. 차서범삼이고, 견자첨위유관권징, 용용누판. 여이소집진송사야, 즉이《송염》명, 개욕인인관람운이. 광서신묘하월서사란식**내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 문을 닫아걸고 손님을 물리친 채 매일 책을 한 권씩 손에 쥐고 그것으로써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쉬었으며, 일찍이 《의방총화(醫方叢話)》 8권을 엮어 판각에 부친 적이 있다. 나는 성품이 잘 잊어버려 읽고 나면 문득 기억하지 못하므로, 책 가운데 놀랄 만하고 기뻐할 만한 일을 발견하면 손닿는 대로 기록하였고, 혹 같은 일인데도 기록과 서술이 서로 다르면 이 또한 함께 기록하였으며, 그 일이 다른 일과 변론이 있고 증거가 있는 것과 과거의 사실(고실)을 인용하여 상고하고 검증할 만한 것들 또한 부록으로 덧붙였다. 책 속의 잠언과 격언에 이르러서는 내가 특히 그것으로 스스로 경계할 수 있음을 기뻐하였다.​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손으로 기록한 것이 점차 많아졌으므로, 이에 《세설신어》의 예를 본받아 부문을 36개로 나누고 기록한 남송과 북송의 일을 분류별로 배열하였다. 비록 사건과 사고가 비첩과 창기에 국한되어 있으나, 제각기 사유와 원인이 있으니 진실로 구분할 수 있다. 곧 각 분류에 실린 내용의 뒤에 혹 역대 왕조의 사실을 덧붙이거나 혹 옛 현인의 법도 있는 말씀(법언)을 이어 붙였으니, 그사이의 비록 단 한 마디 말이나 짧은 단어일지라도 모두 근거한 바가 있으며, 요컨대 나 같은 속된 사람이 망령되이 사사로운 억측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이 책은 무릇 세 차례 원고를 바꾸었으며, 본 사람들이 모두 권선징악에 관계된다고 말하며 판각하여 출판하기를 권하였다. 나는 수집한 바가 모두 송나라의 일이므로 곧 《송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니,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끌어들여 보게 하고자 할 뿐이다. 광서 신묘년 하월(하월, 음력 6월), 서사란이 기록하다.​**18 권일 단방 덕의 경직 경오 참회 알절**권1: 단방(端方, 단정하고 바름), 덕의(德義, 도덕과 의리), 경직(耿直, 강직함), 경오(警悟, 깨달아 앎), 참회(慚悔, 부끄러워하고 후회함), 알절(遏絕, 끊어 차단함)​**19 권이 하뢰 간극 오뇌 군욕**권2: 하뢰(瑕纇, 흠집과 잘못), 간극(間隙, 틈과 갈등), 오뇌(懊惱, 고뇌하고 번민함), 군욕(窘辱, 곤욕을 당함)​**20 권삼 고루 환해 분격 긍후**권3: 고루(苦累, 고통과 얽매임), 환해(患害, 재앙과 피해), 분격(忿激, 분개함), 긍후(矜詡, 자랑하고 뽐냄)​**21 권사 일예 피무 궤휼**권4: 일예(逸豫, 안일하고 즐김), 피무(紕繆, 오류와 잘못), 궤휼(詭譎, 속이고 기만함)​**22 권오 협사 조박 광망**권5: 협사(狹邪, 기창가와 유곽), 조박(佻薄, 경박함), 광망(狂妄, 미치고 망령됨)​**23 권육 비오 압닐**권6: 비오(卑污, 비열하고 더러움), 압닐(狎暱, 친압하고 지나치게 가까함)​**24 권칠 희희 기초 애묵**권7: 희희(嬉戲, 놀이와 장난), 기초(譏誚, 비꼬고 꾸짖음), 애묵(愛慕, 사랑하고 그리워함)​**25 권팔 감척 혹닉 치종**권8: 감척(感戚, 감동과 슬픔), 혹닉(惑溺, 미혹되고 빠짐), 치종(侈縱, 사치하고 방종함)​**26 권구 참절 잔폭 복망**권9: 참절(僭竊, 분수를 넘고 찬탈함), 잔폭(殘暴, 잔인하고 난폭함), 복망(覆亡, 전복되고 멸망함)​**27 권십 과보 기이**권10: 과보(果報, 인과응보), 기이(奇異, 기이함)​**28 권십일 박변 부회**권11: 박변(駁辨, 반박하고 논변함), 부회(傅會, 억지로 끌어다 붙임)​**29 권십이 총잡**권12: 총잡(叢雜, 이것저것 뒤섞임)​---​# [번역 외 추가 설명 및 정보]​* **서사란(徐士鑾, 1833~1893):** 청나라 말기의 학자이자 관료로 자는 원청(沅青)입니다. 태주(台州) 태수를 지냈으며 정치적 명성이 높았습니다. 은퇴 후 고향에서 고서의 일화들을 수록한 《의방총화》, 《송염》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시경(詩經) 관련 인용:** 서문 중 一言括盡詩三百,不出無邪兩字中은 《논어(論語)》 위정(為政)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인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시경 삼백 편을 한마디로 가로지르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이다)를 인용한 구절입니다. 책의 내용이 남녀 간의 정욕을 다루고 있으나 본질은 권선징악의 순수한 뜻에 있음을 강조하는 맥락입니다.* **서효묵(徐孝穆)과 옥대신영:** 서효묵은 남북조 시대 진(陳)나라의 문인 서릉(徐陵, 507~583)의 자입니다. 그는 당시의 화려한 궁체시(宮體詩)를 모은 시집인 《옥대신영(玉台新詠)》의 서문을 지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편저자인 서사란과 성(徐)이 같고, 남녀의 정을 다룬 화려한 문학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비유 대상으로 사용되었습니다.​《宋艷卷一》[View] [Edit] [History]1 端方2 ◎楊邦乂,字晞稷,吉州吉水人。博通古今,以舍選登進士第。遭時多艱,每以節義自許。歷婺源尉,蘄、廬、建康三郡教授,改秩知溧陽縣。建炎三年,金人濟江,鼓行逼城。時李棁以戶部尚書董軍餉,陳邦光以顯謨閣直學士守建康,皆具降狀,逆之十里亭。金帥完顏宗弼既入城,棁、邦光率官屬迎拜,惟邦乂不屈膝,以血大書衣裾,曰:「寧為趙氏鬼,不為他邦臣!」宗弼不能屈。翼日,遣人說邦乂,許以舊官。邦乂以首觸柱礎流血,曰:「世豈有不畏死而可以利動者哉!速殺我!」已而宗弼再引邦乂,邦乂不勝憤,遙望大罵。宗弼大怒,殺之,剖取其心。年四十四。事聞,贈直秘閣,賜田三頃,官為斂葬,即其地賜廟褒忠,謚忠襄,官其四子。邦乂少處郡庠,目不視非禮,同舍欲隳其守,拉之出,托言故舊家,實娼館也。邦乂初不疑,酒數行,娼女出,邦乂愕然,疾趨還舍,解其衣冠焚之,流涕自責。紹興七年,樞密院言邦乂忠節顯著,上曰:「顏真卿異代忠臣,朕昨已官其子孫。邦乂為朕死節,不可不厚褒錄,以為忠義之勸。」加贈徽猷閣待制,增賜田三頃。「宋史」3 《鶴林玉露》:楊忠襄公少處郡庠,足不涉茶坊酒肆。同舍生欲壞其守,拉之出飲,托言朋友家,實娼館也。公初不疑,酒數行,娼艷妝而出,公愕然,疾趨而歸,解其衣焚之,流滯自責。人徒見胡忠簡公銓以編修官乞斬秦檜,甘心流竄。忠襄以金陵一倅唾罵兀術,視死如歸,豈知其為布衣時,所立已卓然矣!4 ◎岳少保飛至孝。母留河北,遣人求訪迎歸;母有痼疾,藥餌必親;母卒,水漿不入口者三日。家無姬侍。吳玠夙服飛,願與交歡,飾名妹遺之。飛曰:「主上宵旰,豈大將安樂時耶?」卻不受,玠益敬服。飛少好飲,帝戒之曰:「卿異時到河朔乃可飲。」遂絕不飲。帝初為飛營第,飛辭曰:「敵未滅,何以家為?」或問天下何時太平,飛曰:「文臣不愛錢,武臣不惜死,天下太平矣!」「宋史」5 蝶訪案,《宋史》稱吳玠夙服岳少保,願與交歡,遺以名姝。然君子愛人以德,其用意蓋左。因考趙崇絢《雞肋》,載唐韓宏惡李光顏忠力,思有以抗蔑之,乃飾名姝遺光顏。光顏大合將校,置酒,使者引侍姝至,秀曼都雅,一軍驚視。光顏徐曰:「我去室家久,以為公憂,誠無以報德。然將士皆棄妻子,蹈白刃,奈何獨以女色為樂?」厚賂使者遣之,將士感激。蝶訪曰:李、岳之不受則同,韓、吳之遺迥異。觀玠之飾而遺,及岳卻而不受,玠益敬服,知玠殆試岳耳。6 ◎丁度,字公雅,謚文簡。性淳質,不為威儀。居一室十餘年,左右無姬侍。然喜論事。在經筵歲久,帝每以學士呼之而不名,嘗問蓍龜占應之事,乃對:「卜筮雖聖人所為,要之一技而已,不若以古之治亂為監。」「宋史」7 ◎李燾,字仁甫。紹興八年擢進士第。燾性剛大,特立獨行。早著書,檜尚當路,檜死始聞於朝。暨在從列,每正色以訂國論。張栻嘗曰:「李仁甫如霜松雪柏。」無嗜好,無姬侍,不殖產。平生生死文字間,《長編》一書用力四十年,葉適以為春秋以後才有此書。「宋史」8 ◎包恢,字宏父,謚文肅,建昌人。知隆興府兼江西轉運,沈妖妓於水,化為狐,人皆神之。歷仕所至,政聲赫然。「宋史」9 蝶訪曰:「倩盼作妖狐未慘,肥甘藏毒鴆猶輕」,陸放翁句也。張文和公廷玉謂此二語,可作富貴人座右銘。10 ◎楊簡,字敬仲,慈溪人。乾道五年舉進士。後知溫州,移文首罷妓籍,尊賢敬士。「宋史」11 蝶訪案:《楊簡傳》簡論治務中,亦有罷妓籍從良一事,洵仁人之用心也。《宋史》論楊簡之學,非世儒所能及,施諸有政,使人百世而不能忘。然雖享高年,不究於用,豈不重可惜哉!12 ◎司馬溫公與龐元魯,俱為張存龍圖婿。張夫人賢惠。龐穎公帥太原,溫公從闢,是年三十餘,未有子。龐公與劉夫人欲有所置。劉發之,張欣然莫逆,未幾得之。凡歲幾朝,溫公未嘗盼睞。龐、劉知之,必以主母在嫌。一日召張夫人賞花,溫公不出。食已具,是婢靚妝就書院供茶,溫公怫然曰:「這下人,今日院君不在宅,爾出來此作甚麼?」明日,潁公幕府曰:「司馬院丞卻有祖風。」謂相如、卓氏也。縣君孫兆曰:「司馬院丞可惜不會彈琴,卻會鱉廝趯。」聞者大笑。「畫墁錄」13 《清波別志》:劉蒙賢良書乾司馬溫公,乞以鬻下一婢之資五十萬,以濟其貧。又責公不效韓退之所為,蓋已欲為劉叉之攫金也。公複書,其略曰:「某家居食不敢常有肉,衣不敢純衣帛,何敢以五十萬市一婢乎?」又曰:「退之文為天下貴,故當時王公碑碣靡不請焉。受其厚謝,隨散之親舊以行義,某豈敢望退之哉!」一書千餘言,遜謝甚苦,訖無一語詆其妄。舊傳公未有子,清河郡君為置一妾,一日乘間俾盛飾入書室,覬一顧,而公略不領。妾思所以嘗之,取一帙問曰:「中丞,此是何書?」公拱手莊色對曰:「此是《尚書》。」妾乃逡巡而退。公嘗答孫察為其伯之翰求銘志書,歷敘多年不為人作碑志,所辭拒者數十家,後複辭劉原父垂絕之托,於《十國紀年·序》載之甚詳。以是知買婢之資,撰碑之謝,公豈有之!蒙既登公門,公之介特清淳,豈不素知!顧乃鑿空而舉二事,非公宏度,孰能非意理遣一笑容之乎?14 ◎韓魏公在政府,家有女樂二十餘輩,及崔夫人亡,一日盡厚遣之。同列多勸其且留為暮年歡,公曰:「所樂幾何,而嘗令人心勞,孰若吾簡靜之樂也?」「人譜類記」15 ◎沈持正名樞,紹興中參政。和議成,語同列曰:「官家好呆。」上聞之,謫筠州。攜一鬟去,數年歸嫁,仍處子。安吉尉潘方壽以詩寄曰:「昔年單騎赴筠州,覓得歌姬共玩游。去日正宜供夜直,歸來渾未識春愁。禪人尚有香囊愧,道士猶懷炭婦羞。鐵石心腸延壽藥,不風流處卻風流。」蓋以嘆持正云。「啽囈集」16 ◎二程先生,一日同赴士夫家會飲,座中有二紅裙侑觴。伊川見妓,即拂衣起去。明道同他客盡歡而罷。次早,明道至伊川齋頭,語及昨事,伊川猶有怒色。明道笑曰:「某當時在彼與飲,座中有妓,心中原無妓;吾弟今日處齋頭,齋中本無妓,心中卻還有妓。」伊川不覺愧服。「人譜類記」17 ◎詔賜楚州孝子徐積,絹三十匹,米三十石。積從胡瑗學,一見異待之。嘗延食中堂,二女子侍立。將退,積問曰:「門人或問見侍女否,何以答之?」瑗曰:「莫安排。」積聞此言省悟,所學頓進。此段不但見於諸公紀聞,亦載在《哲宗實錄》,乃元豐八年事也。其警後學,要妙在「莫安排」三字,故史臣從而書焉。「清波雜志」18 蝶訪曰:「菩提本非樹,明鏡亦非台。本來無一物,何處惹塵埃?」此《傳燈錄》中慧能大師偈也。合觀程、胡兩賢,所謂天理渾然常存,無一毫人欲之私。19 ◎京師百官上日,惟翰林學士敕設用樂,他雖宰相亦無此禮。優伶並開封府點集。陳和叔除學士時,和叔知開封府,遂不用女優。學士院敕設不用女優,自陳和叔始。「夢溪筆談」20 ◎陳淳祖為賈似道之客,守正為諸客所疾,內人亦惡之。一日諸姬爭寵,密竊一姬鞋,藏淳祖床下,意欲並中二人。賈入齋見之,心疑焉。夜驅此姬至齋門誘之,淳祖不答,繼以大怒。賈方知其無他,遂勘諸妾,得其情,由是極契淳祖,後遂有知南軍之命。金、元院本演其事。「警心錄」21 ◎舊傳宗本至京師,有一貴戚欲試之,因以猾娼薦寢。本登榻,鼻息如雷,其娼為般若光所爍,通夕不寐。翌旦,炷香拜之曰:「不意今日得見古佛。」「中吳紀聞」22 蝶訪曰:猾娼不敢近宗本,由宗本所持戒律堅定也。因考《閩中摭聞》,方靈皋紀黃石齋道周軼事云:黃岡杜蒼略先生客金陵,習明季遺事,嘗言崇禎末年,餘中丞集生與譚友夏結社金陵,適石齋黃公來游,與訂交,意頗洽。黃公造次必於禮,諸公心向之而苦其拘,思試之。妓顧氏,國色也。聰慧通書史,撫節按歌,見者靡不心醉。一日大雨雪,觴黃公於餘氏園,召顧佐酒。公意適無忤,諸公更勸酒,劇飲大醉,送公臥特室榻上,衾枕茵席各一,使顧盡弛褻衣入,隨鍵戶,諸公伺焉。公驚起,索衣不得,因引衾自覆薦,而命顧以茵臥。茵厚且狹,不可轉,乃使就衾。顧暱就公,公曰:『無庸側身內向,息數十轉即安寢。』漏下四鼓覺,轉面向外。顧佯寢無覺,而以體傍公。俄頃,公酣寢如初。詰旦顧出,具言其狀,且曰:『公等為名士,賦詩飲酒是樂而已矣。為聖為佛,成忠成孝,終歸黃公。」觀此,則石齋先生更勝宗本,可謂真道學矣。案:文廟《通考》「石齋先生,國朝道光三年從祀,稱先儒。」23 德義24 ◎袁韶,字彥淳,慶元府人。淳熙十四年進士,為臨安府尹幾十年,理訟精簡,道不拾遺。里巷爭呼為佛子,平反冤獄甚多。卒贈少傅,後以郊恩累贈太師、越國公。韶之父為郡小吏,給事通判廳,勤慎無失。歲滿當代,不聽去。後通判至,複留用之,因致豐饒。夫妻俱近五十無子,其妻資遣之莊臨安置妾。既得妾,察之有憂色,且以麻束發,外以彩飾之。問之,泣曰:「妾故趙知府女也,家西川。父歿家貧,故鬻妾以為歸葬計耳。」即送還之,其母泣曰:「計女聘財,猶未足以給歸費,且用破矣,將何以酬汝?」徐曰:「賤吏不敢辱娘子,聘財盡以相奉。」且聞其家尚不給,盡以囊中資與之,遂獨歸。妻迎問之曰:「妾安在?」告以其故,且曰:「吾思之,無子命也!我與汝周旋久,若有子,汝豈不育,必待他婦人乃育哉?」妻亦喜曰:「君設心如此,行當有子矣!」明年生韶。「宋史」25 ◎馮京,字當世。其父商也,壯年無子,將如京師,其妻授以白金數笏,曰:「君未有子,可以此為買妾之資。」及至京師,買一妾,立券償錢矣,問妾所自來,涕泣不肯言。固問之,乃言其父有官,因綱運欠折,鬻妾以為賠償之計。遂惻然不忍犯,遣還其父,不索其錢。及歸,妻問買妾安在,具告以故,妻曰:「君用心如此,何患無子!」居數月,妻有娠。將誕,里中人皆夢鼓吹喧闐迎狀元。京生,家貧甚,讀書於灊山僧舍。後作三元。有詩號《灊山集》,皆其未遇時所作,如「琴彈夜月龍魂冷,劍擊秋風鬼膽粗。」「吟氣老懷長劍古,醉胸橫得太行寬。」「豐年足酒容身易,世路無媒著腳難。」皆不凡。「鶴林玉露」26 蝶訪曰:能與貧人共荒谷,定有明珠出蚌胎。因以嘆濟人之急,教人之難,其所保全者為正多。27 ◎時邦彥,陽武人。父為鄭州牙校,補軍將吏,部差押綱至成都,時年六十四。婦方四十餘,未有子,謂其夫曰:「我有白金百星,可攜行至蜀,求一妾歸,冀得子為身後計。」父至成都輸納畢,訪牙儈,見一女甚端麗,詰其家世,不對。窺見以布總發,怪問之,悲泣曰:「父本都下人,為雅州掾官,卒,扶護至此不能歸,鬻妾欲辦裝耳!」父惻然,攜金往見其母,以助其行,又為乾行計,同上道。路中謹事掾妻如部曲。至都下,僦居菆殯畢,方辭歸。妻迎問買妾狀,具以實告。未幾妻有孕。一夕,夢有數人披衲襖,輿一金紫人留堂中。及旦,邦彥生,後堂犬亦生九子,故小字十狗。後登進士第一,官至吏部尚書。「東皋雜錄」28 案:《泊宅編》載狀頭時邦彥之母夢云云,故小名十狗。《同年錄》見之。並謂《東皋錄》載邦彥之父有陰德事甚詳。29 蝶訪曰:孤寡之人,最堪憐憫,仁人用心,宜加矜恤。以上三則,事實相同,皆確而有據,蓋古人於此等優為之。彼夫多蓄姬妾以求子嗣,而於矜孤恤寡、利物利人等善行絕不一為,又安望得子且貴哉?30 ◎馮京,字當世,鄂州江夏人。少雋邁不群,舉進士,自鄉舉、禮部以至廷試,皆第一。時猶未娶,張堯佐方負宮掖勢,欲妻以女。擁至其家,束之以金帶,曰:「此上意也。」頃之,宮中持酒肴來,直出奩具目示之。京笑不視,力辭。嘗過外兄朱適,出侍妾,詢知為同年進士妻,亟請而嫁之。京拜太子少師,致仕。薨年七十四。贈司徒,謚曰文簡。「宋史」31 ◎陳規,字元則,密州安丘人。中明法科。自紹興以來,文臣鎮撫使有威聲者,惟規而已。規端毅,寡言笑,然待人和易。以忠義自許,尤好振施,家無贏財。嘗為女求從婢,得一婦甚閒雅,怪而詢之,乃雲夢張貢士女也,亂離夫死無所托,鬻身求活。規即輟女奩嫁之,聞者感泣。「宋史」32 ◎查道,字湛然,奉養以孝聞。母嘗病,思鱖羹,方冬苦寒,市之不獲。道泣禱於河,鑿冰取之,得鱖尺許以饋。又刲臂血寫佛經,母疾尋愈。兒時嘗戲畫地為大第,曰:「此當分贍孤遺。」及居京師,家甚貧,聚族之煢獨者,祿賜所得,散施隨盡,不以屑意。與人交,情分切至,廢棄孤露者待之愈厚,多所周恤。初赴舉,貧不能上,親族裒錢三萬遺之,道出滑台,過父友呂翁家。翁喪,貧窶無以葬,其母兄將鬻女以襄事。道傾褚中錢,且為其女擇婿,別加資遺。又故人卒,貧甚,質女婢於人,道為贖之,嫁士族。搢紳服其履行。嘗夢神人謂曰:「汝位至正郎,壽五十七。」而享年六十四,論者以為積善所延也。「宋史」33 《國老談苑》:查道初應舉,自荊州湖游索,獲十餘萬。至襄陽逆旅,見女子端麗秀出,非塵中之偶,因詰其所來,乃故人之女也。遂以行囊求良謹者嫁之,是歲由此罷舉。34 ◎豐有俊,字宅之。登青樓,偶見小娼,疑故人女,累目之。酒罷,女入曰:「豐官人識妾否?」詰之,果故人女。豐曰:「汝且退。」豐與臨安尹有契,明日以白尹,且云:「某僅有錢百千,從公更貸二百千嫁之。」尹嘉其誼,即取入府,厚奩具,擇良士嫁焉。尹即王宣子佐也。「行營雜錄」35 ◎滕洙,字希尹,世家徽之婺源。五子皆業進士。公為人恭儉好義,凡少年所為,飲酒歌呼,饒樂放縱事,未嘗一接也。自奉菲薄,食不二味,苦節力行,終身如一日,不以豐約易其度。嘗有一士族女,年甫齠齔,家貧母病,父為牙儈所欺,鬻之娼家。聞者不平而莫能誰何。君獨憤然,呼娼儈,許償值還女。娼陽諾,而實謀挾之遁。君廉知之,亟訴諸官,未決。娼與儈謀偽契,增其值,累數倍,覬君憚費而止。君喜女得還,不複斥其偽,即謀所以酬之,然未有處也。會君長子璘舉鄉貢,郡饋鹿鳴勸駕之金,即以取女還其家。縣令張安中聞之,擊節稱嘆,書其牘,譽君良美。蓋雖居困約,猶自拔為義,至他嫁親戚孤遺之女,與矜其貧而恤之者猶多,不能盡書也。「尊德性齋小集」36 蝶訪閱《雲溪友議》:李尚書翱在潭州席上,有舞柘枝者,顏色憂悴,問之,是故韋左司愛姬之女。李公速命更其舞衣,延入與韓夫人相見。見其言語清楚,宛有冠蓋風儀,遂於賓榻中選士嫁之。舒侍郎元輿聞之,贈李詩曰:「湘江舞罷忽成悲,便脫蠻靴出絳帷。誰是蔡邕琴酒客,魏公懷舊嫁文姬。」知此等德義之舉,前人已有行之者矣。若查,若豐,若滕,較李尚書為難,非勇於為義者乎?37 ◎司馬旦,字伯康,以熙寧八年致仕,歷官十七遷,至太中大夫。元佑二年卒,年八十二。旦澹泊無欲,奉養苟完,人不見其貴。與弟光尤友愛終始,人無間言。旦與人交以信義,喜周其急。嘗有以罪免官,貧不能存者,月分俸濟之,其人無以為報,願以女為妾。旦驚謝之,亟出妻奩中物使嫁之。「宋史」38 ◎李丞相沆,有長者譽。一世僕逋宅金數十千,忽一夕遁去。有女將十歲,美姿格,自寫一券系於帶,願賣於宅以償焉。丞相大惻之,祝夫人曰:「願如己子育於室,訓教婦德,俟成求偶嫁之。且請夫人親結縭以主婚,然而務在明潔。」夫人如所誨,及笄,擇一婿亦頗良,具奩幣歸之。女範果堅白,其二親後歸舊京,聞之淪感心骨。丞相病,夫婦刲股為羹饋之;至薨,衰絰三年以報。「厚德錄」39 ◎韓琦在政府,以三十萬錢買女婦張氏,姿色美麗。券成,張忽潸然曰:「妾本修職郎郭守義妻也,部使者挾私,劾以敗官。今秋高歲晚,實恐舉家餓死京師,願身從人,活守義兒女耳!」琦惻然憫之,遣張持錢還舍,令語守義曰:「敗官果非辜,可訴諸朝。」「事白,汝卻歸我家。」郭後辯雪,張來如約。琦使退曰:「吾位宰相,豈可妾士人妻!向日之錢,用應盡矣,即以前券包二十金,助以之官,善視兒女。」張感激百拜而去。「昨非錄」40 ◎趙忠簡公秉政日,使臣關永堅趨承云:「久乃丐官淮上,貧不辦行,欲貨息女。」公憐之,隨給所須。永堅乞納女,公卻之。力請不已,姑留之。後永堅解秩還,公一見語之曰:「爾女無恙。」永堅謂宿逋未償,公笑不答,且助資送費,囑求良配,遂歸監平江梅裏鎮宗室汝霖。女言雖累年日侍丞相巾櫛,及嫁,尚處子也。汝霖與知泗州王伯路厚,語其詳。伯路云:「前輩於此等優為之,特今之人為難能。」「清波雜志」41 ◎宋翰林學士沈公,字文通,諱遘,錢塘人。舉進士,累遷知制誥,出知杭州。英宗召見勞問,除龍圖閣直學士、知開封府。公為人俊敏,通世務。杭,公鄉郡也。郡人有貧不能葬,及女子孤無以嫁者,公以公使錢葬嫁數百人。娼優養良家女為己子者,奪歸其父母。令行禁止,事至立斷,眾駭服,屏息不敢犯。其治開封亦然,事見《國史》及《臨安志》。「錢塘先賢傳贊」42 《武林紀事》:沈遘,字文通。嘉佑中以禮部尚書知杭州,令行禁止。人有貧無以葬、孤不能嫁者,悉用公府錢為葬嫁者數百人。良家妾入娼優者,悉以錢贖歸其父母。43 《燕翼貽謀錄》:祖宗舊制,州郡公使庫錢酒,專饋士大夫入京往來與之官、罷任旅費。所饋之厚薄,隨其官品之高下,妻孥之多寡。此損有餘補不足,周急不繼富之意也。其講睦鄰之好,不過以酒相遺,彼此交易,複還公帑,換易答之,不敢自飲也。44 ◎開禧中有苗氏女,本宦族也,失身為妾於某朝士。臨行作詩別其母云:「桃花飛盡馬塍春,此日辭家淚滿巾。豈是比鄰無嫁處,千山萬水逐行人?」朝士者知之,遂厚給資以嫁焉。「浩然齋雅談」45 ◎呂文仲,歙人。為中丞,有陰德。咸平中,鞠曹南滑民趙諫獄。諫豪於財,結士大夫,根蒂特固。忽御寶封軒裳姓名七十餘輩,自中降出,皆昔委諫營產買妾者,悉令窮治。文仲從容奏曰:「更請察其為人,密籍姓名,候舉選對敡之日,斥之未晚。」真宗從之。「玉壺清話」46 ◎李和文都尉好士,一日召從官呼左右軍官妓,置會夜午。台官論之,楊文公以告王文正。文正不答,退朝以紅箋書小詩,遺和文,且以不得預會為恨。明日,真宗出章疏,文正曰:「臣嘗知之,亦遺其詩,恨不得往也!太平無象,此其無象乎!」上意遂釋。「厚德錄」47 《避暑錄話》:李公武尚太宗獻穆公主。好學,從楊大年學作詩,以師禮事之,死為制服。士大夫以此推重。私第為閒燕、會賢二堂,一時名公卿皆從之游。卒謚和文,外戚未有得文謚者,人不以為過。48 蝶訪考王鞏《聞見近錄》,亦載此則。鞏,王文正公旦之孫也。卷中稱先文正,所載與《厚德錄》無異。惟《厚德錄》「和文」誤「文和」,証以《避暑錄話》為改之。49 ◎劉德初為儀真教授,日與官奴密游,監司欲發其事。晁美叔秘監,時為大漕,其子之道說之,從容言劉某與某氣類不相合,然其人必貴。美叔因營救之,德初甚惑焉。「曲洧舊聞」50 《周禮·天官·酒人》「奚三百人」注:「今之侍史官婢。」51 《輟耕錄》謂:「今以妓為官奴,即官婢也。」52 《惜抱軒筆記》:王子敬小名官奴,若唐宋人自呼妓女為官奴。李義山似誤認《樂毅論》之官奴亦為妓也。《妓席》詩「請書為小字,切莫喚官奴」,此誤用右軍語也。若東坡詩「欲借官奴遣吹笛」,及在湖州有「遣官奴持燭」語,此皆指妓女,與子敬無與。53 《梅道人遺墨》:東坡先生守湖州日,游何道兩山,遇風雨,回憩賈耘老溪上澄暉亭,命官奴執燭,畫風竹於壁間。後好事者刻於石,置郡庠。54 ◎張宣徽安道守成都,眷籍娼陳鳳儀。後數年,王懿敏仲儀出守蜀,安道祝仲儀,致書與之。仲儀至郡,呼鳳儀曰:「張尚書頃與汝留情乎?」鳳儀泣下。仲儀曰:「亦嘗遺尺牘,今且存否?」曰:「迨今蓄之。」仲儀曰:「尚書有信至,汝可盡索舊帖,吾欲觀之,不可隱也。」遂悉取呈,韜於錦囊甚密。仲儀曰:「尚書以剛勁立朝,少與多讎。汝毋以此黷公!」乃取書付鳳儀,並囊盡焚之。後語安道,張甚感之。王張姻家也。「墨莊漫錄」55 《詞苑叢談》:陳鳳儀,成都樂妓也,有《一絡索》詞送人云:「蜀江春色濃如霧,擁雙旌歸去。海棠也似別君難,一點點,啼紅雨。/ 此去馬蹄何處?向沙堤新路。禁林賜宴賞花時,還憶著、西樓不?」56 朱彞尊《詞綜》:「陳鳳儀,成都樂妓」,而《一絡索》詞列在元人詞末,不知何據?蝶訪繹詞中「擁雙旌歸去」及「禁林賜宴」句意,似即送張宣徽之作,俟再考。57 ◎錢公若水為同州推官,有富民走失一小女奴,莫知所在。父母以訴於州,州委錄參鞫之。錄參舊有求於富民,不獲,遂劾其父子共殺女奴,投水中。法外凌窘,不勝其苦。遂自誣伏。獄具,上於州,州委官審覆,亦無反異,獨若水遲疑。錄參詣廳詬罵曰:「豈公受富民錢,故出之乎?」若水但笑曰:「今數日當死,安可容易不熟察?」又越旬,不決。知州亦有語,若水終不奪,上下皆怪訝。一日,若水詣知州,屏人告曰:「向某所以遲留此獄者,蓋慮其冤,嘗以家財訪求女奴,今得之矣。」知州驚曰:「女奴安在?」若水歸,使人密送女奴於知州所。知州垂簾呼其父母,謂曰:「汝女今至,還識之否?」曰:「安有不識!」即揭簾推出,父母喜曰:「是也!」於是引出富民釋之。富民號泣,謝曰:「非使君,某一旦遂至滅門。」知州曰:「此乃推官,非我也!」富民亟詣推官求謝,若水閉門不納。富民遮垣而哭,歸傾家財飯僧,以為若水壽。知州欲以其事聞,若水曰:「休也!某初心止欲拔冤,非敢希賞,萬一敷奏,在某固好,於錄參卻如何?」知州益加敬重。太宗聞知,驟加進擢,自幕職不半年知制誥,又二年為樞密。「樂善錄」58 耿直59 ◎王安禮,字和甫,安石之弟也。早登科,其以翰林學士知開封府日,事至立斷。前滯訟不得其情,及具案而未論者幾萬人,安禮剖決未三月,三獄院及畿赤十九邑囚系皆空。書揭於府前,遼使過而見之,嘆息誇異。宗室令騑以數十萬錢買妾,久而斥歸之,訴府督元直。安禮視妾,既灸敗其面矣。即奏言:「妾之所以直數十萬者,以姿首也。今灸敗之,則不複可鬻,此與炮烙之刑何異?請勿理其直,而加厚譴以為戒。」詔從之,仍奪令騑俸。「宋史」60 ◎杜杲,字子昕,邵武人。知六安縣,民有嬖其妾者,治命與二子均分。二子謂妾無分法,杲書其牘云:「《傳》云:子從父令,《律》曰:違父教令,是父之言為令也。父令子違,不可以訓。然妾守志則可,或去或終,當歸二子。」部使者季衍覽之,擊節曰:「九州三十三縣令之最也!」「宋史」61 ◎範純仁知河中,錄事參軍宋儋年暴死。純仁使子弟視喪,小殮,口鼻血出。純仁疑其非命,案得其妾與小吏奸,因會置毒鱉肉中。純仁問食肉在第幾巡,曰:「豈有既中毒,而尚能終席者乎?」再訊之,則儋年素不食鱉,其曰毒鱉肉者,蓋妾與吏欲為變獄張本,以逃死爾。實儋年醉歸,毒於酒而殺之。遂正其罪。「宋史」62 ◎明鎬,字化基,密州安丘人,中進士第,卒謚文烈。鎬端挺寡言,所至安靜有體,而遇事不苟為,世所推重。鎬擢龍圖閣直學士知並州日,大巡邊以備賊。時邊任多紈褲子弟,鎬乃取尤不職者杖之,疲軟者皆目解去,遂奏擇習事者守堡寨。軍行,娼婦多從之。鎬欲驅逐,惡傷士卒心。會有忿爭殺娼婦者,吏執以白,鎬曰:「彼來軍中何耶?」縱去不治,娼婦聞皆散走。「宋史」63 蝶訪曰:杲有決斷,達通事理。王、杜諸人之明決有可取者,要皆直正無私者也。64 ◎泰伯一日與處士陳烈同赴蔡君謨飯。時正春時,營妓皆在後圃賣酒,相與至筵前聲諾,君謨留以佐酒,烈已不樂。酒行,眾妓方歌,烈並酒擲於案上,作惶懼之狀,逾垣攀木而遁。時泰伯坐上賦詩云:「七閩山水掌中窺,乘興登臨對落暉。誰作畫樓沽酒處,幾多鳴櫓送潮歸?晴來海色依稀見,醉後鄉心積漸微。山鳥不知紅粉樂,一聲檀板便驚飛。」既而烈聞之,遂投牒云:「李覯本無士行,輒簉賓筵,詆釋氏為妖胡,指孟子為非聖。按吾聖經云,非聖人者無法,合依名教肆諸市朝。」君謨覽牒,笑謂來者云:「傳語先生,今後不使弟子也。」君謨後每會客,必以示坐上,以供一笑云。「道山清話」65 ◎王陶樂道二子,寔字仲弓,寧字幼安,卜居許昌。仲弓與光祿行游,篤厚博學君子也,好客喜酒。先子叔父常請見之,必委曲留連,飲食教誨而歸。雖鄉里庸夫賤士,莫不謹睦誠接,得其歡心。平居未嘗釋卷。先子一日劇暑中迫昏會歸,皆已大醉,偶遺衣,後往取之,見仲弓披衣執策,就視之,乃《禮記疏》也,其精勤如此。鄉人敬其德。幼安晚以上書關元佑得幸,致身台輔。時曾存之在許,謝客,獨以聲妓自奉。仲弓嘗曰:「若存之之富,舍弟之貴,寔寔不愛。」蓋仲弓口吃也。「過庭錄」66 ◎昔忠宣尹洛,其佛牙院主不自檢束,穢行甚彰,然不犯有司,忠宣初不問也。時五侍郎從居,嫉惡之,力勸忠宣抵其罪。忠宣曰:「彼有犯,固在不宥,豈可無犯而求之乎?吾則未能,俟爾守此未晚。」後數年,侍郎果守洛,久患其事。有茶肆婦人,文及甫之舊妾也,與佛牙主通。被盜,訟至府,事連佛牙主。侍郎忽省前過,知其文氏妾,恐有所請,就庭下直面鞫勘。案成,僧罪應徒而背有大瘤。吏以聞,侍郎判曰:「非瘡非病,特決。」戒閽者扃門即行。及甫繼至,囑聞無及,複回。僧二杖而瘤落,三杖而至斃,一境莫不驚伏。「過庭錄」67 ◎羅點春伯為浙西倉、攝平江府,忽有故主訟其逐僕欠錢者,究問雖得實,而僕黠甚,反欲污其主,乃自陳嘗與主饋之姬通,既而物色,則無有也。於是遂令僕自供奸狀甚詳,因判云:「僕既欠主人之錢,又且污染其婢。事之有無,雖未可知,然其自供罪狀已明,合從奸罪定斷,徒配施行。所有女使,候主人有詞日根究。」聞者無不快之。「齊東野語」68 ◎常州某寺長老,年過五十,事母孝謹,家既無兼侍,職置丈室。一日稱暴亡,時當暑月,即治棺收斂,舁致圃僕之舍,終夕修營哭泣,將以翌早出殯。寓客張推官自新安罷歸,攜一娼女趙壽兒來,趙有色藝,張氏待之不能滿欲,是夜忽失之,以為逃去。經廂官立賞捕緝,其子弟云:「主僧日言徽州人與壽兒接談,壽兒每以見僧母為詞在省之。意其竊去而詐云母亡耳。」後三日,果有人告僧母原不死,乃僧趁黃昏時候,裝著壽兒就木,然後呼仵匠分付焉。扣之如所言,僧、娼至郡庭。太守莫伯虛囚諸獄,荷枷掠訊,僧受杖,毀度牒為民。壽兒乞免罪而執事樂籍中,理掾以其勝諸妓,亦為呈請。太守不聽,竟撻之,仵僕輩連坐者十餘人。娼錄赴牙儈。「夷堅志」69 蝶訪曰:不逐時趨者,必清剛耿介一流人,按獄問罪,主張自在官司。彼理掾冒昧代娼妓求請,直好色而忘廉恥,亦肆無忌憚矣!70 ◎徐俯,字師川,山谷之甥。然自為一家,不似渭陽高自標樹,藐視一世,同時諸人多推下之。師川在靖康中,朝列有改名避偽楚諱者,師川名婢曰「昌奴」,朝士至則呼之。以名節自任,故其詩云:「直道庶幾師柳下,不應四海獨詩名。」可謂實錄。諸人所以推下之者,蓋不獨以其詩也。俯有《東湖集》。「江西詩派小序」71 《宋史新編》:徐俯,字師川,號東湖。七歲能詩,為山谷所知。以父禧死事,受通直郎。邦昌僭位,遂致仕。工部侍郎何昌言與弟昌辰避邦昌諱,皆改名。俯買婢名「昌奴」,客至,即呼前驅使之。72 《堯山堂外記》:徐師川是山谷外甥,晚年欲自立其名。客有稱其源自山谷者,公讀之不樂,答以小啟曰:「涪翁之妙天下,君其問諸水濱;斯道之大域中,我獨知之濠上。」按此,則師川久已無渭陽之情矣,且借閹寺以進身,倒行逆施,皆晚年之事。以「昌奴」名其婢,頗覺可嘉,特表出之。73 蝶訪曰:是非之公,人心具在,況關名節,公論自存,清議良可畏也。74 警悟75 ◎楊掞,字純父,撫州臨川人。少能詞賦,里陳氏館之,教子數月,拂衣去游襄漢,既而代陳中選。陳謝之萬緡,輦之入娼樓,篋垂盡,夜忽自呼曰:「純父來此何為?」明日遂行。用故人薦,出淮閫杜杲幕。杲曰:「風神如許,他日不在我下。」宋史76 ◎謝希孟在妓所,一日恍然有悟,忽起歸興,不告而行。妓追送江滸,悲戀而啼。希孟毅然取領巾,書一詞與之,詞曰:「雙槳浪花平,夾岸青山鎖。你自歸家我自歸,說著如何過?我斷不思量,你莫思量我。將你從前與我心,付與他人可。」詞苑叢談77 考《黃岩縣志》希孟軼事,引龐元英《談藪》,述希孟在妓所,一日恍然有悟云云,與《詞苑叢談》同,惟詞句以下有「其風流豪俊,氣韻可想」二語。78 蝶訪曰:業海洪波,回頭是岸,懸崖勒馬,可謂大智慧矣。79 ◎王仲言云:天台左譽與言策名之後,籍甚宦途。錢塘幕府樂籍有名姝張蕓女,名穠,色藝妙天下。君頗顧之,如「盈盈秋水,澹澹春山」與「一段離愁堪畫處,橫風斜雨挹衰柳」及「帷云翦水,滴粉搓酥」之句,皆為穠作。當時都人有「曉風殘月柳三變,滴粉搓酥左與言」之對。後穠委身立勛大將家,易娃章,疏封大國。紹興中,覓官行省,暇日訪西湖兩山間,忽逢車輿甚盛,中一麗人,搴簾顧君而顰曰:「如今若把菱花照,猶恐相逢是夢中。」君醒然悟入,即拂衣東渡,一意空門詞綜80 筠翁長短句「眼兒媚」為錢塘名姝張穠作,詞云:「樓上黃昏杏花寒,斜月小闌幹。一雙燕子,兩行征雁,畫角聲殘。綺窗人在東風裏,灑淚對春閒。也應似舊,盈盈秋水,澹澹春山。」81 南湖張綖《詩餘圖譜》:「眼兒媚」一名「秋波媚」,作秦少游詞,詞中「征雁」作「歸雁」:「灑淚」作「無語」,此外一字不差。案:與言為張穠作此詞,一時盛傳「盈盈秋水,澹澹春山」之句,不解張綖何據,以為秦作?82 慚悔83 ◎忠宣守洛,游師雄景叔,忠宣門生也,赴陝漕任,過洛留數日。啟行,忠宣餞於郊,拉程正叔會,而使妓侑酒,蓋忘正叔之來,旋悔之無及。景叔以正叔年德高,讓居上坐,正叔亦不辭。酒數行,景叔啟白忠宣曰:「數妓遠出頗勞,某願各酬一杯。」遂執爵遍勸諸妓,正叔不樂,忠宣甚惶怖。正叔厲言曰:「景叔,願公愛陝之百姓亦如此!」景叔執爵,從容操西音言曰:「複侍講,只有此一勺里。」正叔亦為一嗤,忠宣意遂解。過庭錄84 朱文公《語錄》:楊至說,王十朋詹事守泉州,初到任會七邑宰勸酒,歷告以愛民之意,出一絕以示之曰:「九重天子愛民深,令尹宜懷惻隱心。今日黃堂一杯酒,使君端為庶民斟。」邑宰皆為感動。85 考《學齋占畢》,謂邑令乃字民之官,關系攸重。《魯論》一書,夫子獨丁寧於為宰為邑之戒,實以得百里之地而君之,乃斯民休戚之寄,並援及《朱子語錄》云云。因嘆王梅溪固自得聖門勉邑宰之遺意,而朱文公表而出之。以為儒生作牧之式,民之幸也。蝶訪引此一則,見正叔之不樂,洵得聖賢之正道,而景叔此舉,實得罪於名教,忠宣當日能無內愧於心乎?86 ◎楊誠齋名萬里,為監司時,巡歷至一郡,郡守宴之,官妓歌《賀新郎》詞以送酒,其中有「萬里雲帆何時到」之句,誠齋遽曰:「萬里昨日到。」守大慚,監系此妓。行都紀事87 ◎蔡文忠齊,擢進士第一,以將作丞倅兗,將母之官,年少氣銳,日沉酣以酒色廢務。賢良賈公餗居都中,屢謁不得見,因書一絕屏間云:「聖君寵厚龍頭選,慈母恩深鶴發隨。君寵母恩俱未報,酒如為患悔何追?」文忠見之,亟往泣謝,自是終身不飲酒。類苑88 《東山談苑》載此則,末云文忠矍然起謝之,自是節飲,終身未嘗至醉,與《類苑》稱終身不飲酒異。蝶訪曰:「閒情究累韓光政,醇酒終傷魏信陵」,洪北江哭屠琴塢刺史句也。蔡文忠之泣謝節飲,自是天姿過人處。89 ◎司馬溫公昔在西都,每複被獨樂園,動輒經月。諸老時過之,間亦投壺,來者必為冷淘,然亦未嘗置庖,特呼於市耳。會文潞公守洛,攜妓行春,日邀致公。一日,自至獨樂園,吏視公嘆息,公怪而詰之,答曰:「方花木盛時,公一出數十日,不惟老卻春色,亦不曾看一行書,可惜瀾浪卻相公也。」公深愧之,於是遣馬還第,誓不複出,諸老爭來邀公,必以園吏語謝之。公之克己雅素,固絕人遠甚,彼園吏者,亦以突過鄭康成奴婢矣。五總志90 ◎閩士劉乙,嘗乘醉與人爭妓女。既醒慚悔,集書籍因酒致失賈禍者,編以自警,題曰《百悔經》。自後不飲至於終身。清異錄91 蝶訪曰:「置之瓶中,酒也;酌於杯,注於腸,善惡喜怒交矣,禍福得失歧矣。倘夫性昏志亂,膽脹身狂,平日不敢為者為之,平日不容為者為之;言騰煙焰,事墮阱機。一言蔽之曰:禍泉而已。」此陶穀《清異錄》中語也。事有不可測,人當防未然。劉乙可謂勇於改過者矣。案:閩士劉乙,錄中未敘何時人,惟陶穀既仕宋,此則且可取以為誡,故錄之。92 遏絕93 ◎乖崖帥蜀時,仕蜀者不挈家,止帶給浣濯縫紉二人。乖崖悅一姬,中夜心動,繞屋而行,但云:「張詠小人,張詠小人。」後稍令自近。及將歸,出帖子議親云:「某家室女,房奩五百千。」以禮遣之,果未嘗有犯也。吾師錄94 《厚德錄》:張忠定公詠知益州,單騎赴任。是時一府官屬憚張之嚴峻,莫敢蓄婢使者。張不欲絕人情,遂自買一婢以侍巾櫛,自此官屬稍稍置姬侍矣。張在蜀四年,被召還闕,呼婢父母出資以嫁,仍處女也。95 《夢溪筆談》:蔡君謨嘗書小吳箋云:「張乖崖鎮蜀,當邀游時,士女環左右,終三年未嘗回顧。此君殊重厚,可以為薄夫之檢。」96 ◎趙清獻公拚,號閱道。帥蜀日,有妓戴杏花,清獻喜之,戲語之曰:「髻上杏花真有幸。」妓應聲曰:「枝頭梅子豈無媒?」逼晚,使直宿老兵呼之,幾二鼓不至,複令人速之。公周行室中,忽高聲叫曰:「趙拚不得無禮!」旋令止之,老兵忽自幕後躍出,公怪問之,兵曰:「某度相公,不過一個時辰此念息矣。雖承命,實未嘗往。」蕙畝拾英集97 《宋史》:趙清獻長厚清修,人不見其喜慍。平生不治資業,不蓄聲伎。嫁兄弟之女十數,他孤女二十餘人。施德煢貧,蓋不可勝數。日所為事,入夜必衣冠露香,以告於天,不可告,則不敢為也。宰相韓琦嘗稱拚「真世人標表」,蓋以為不可及雲。98 案:《吾師錄》「窒欲」一條,即述乖崖帥蜀、清獻帥蜀事,惟敘清獻事太略,因照《拾英集》錄出,而「窒欲」條後總論數語可錄也。論云:「夫乖崖之勇也,閱道之清也,而皆未免強制人欲,洵可畏哉!兩公之賢於人者,正以能制也。蘇子卿嚙雪冰天,猶與胡婦生子;胡忠簡飛章遠竄,乃為黎倩題詩,是皆一念不能自持耳!」故曰忍過事堪喜。99 ◎去年訪曾幼卿通判,攜歌舞者同游鳳山,僕有「歌舞不容人不醉,樽前方見董嬌嬈」之句。今歲到鳳山,又闢西隅,築堤種柳,新作數亭,且欲建藏書閣,後堂佳麗,皆屏去之矣。僕嘉其志,又有數語並錄之:「別駕長懷物外心,黃金屢費買山林。後堂不肯著歌舞,高閣惟思貯古今。」石屏集100 ◎山谷《再和元禮春懷十首》並序:「元禮蒲君,成都之佳少年,風調清越,好狎使酒。頃嘗下三蛺,窺九疑,探禹穴,觀濤江,故其詩清壯崛奇,一揮毫數千字,澡雪塵翳,動搖人心。然錢塘江東一都會,風煙花月,不知其幾坊幾曲,變態恍惚,使少年心醉而忘返。元禮蓋入其鄉啖其炙者也,今已持節自苦,恂恂退避,從容學問文章。然時時酒後耳熱,稍出其故態,而又激於聲詩。夫不塞不流,不止不行,此物之情也。故極道狹邪游冶之樂,江湖契闊之愁,至蕭然疲役,不可支持,乃反之以正云。」山谷全集101 「京師素號酒色海,溺者常多濟者稀。吾子堂前有老母,布衣須換錦衣歸。」此《苕溪漁隱叢話》所載詩也。謂不知誰氏作此規誨之言。蝶訪曰:都會風煙花月之盛,今古不殊,少年至繁華地者,當三複是詩以自惕。102 ◎馮樞密京,熙寧初以端明殿學士帥太原,時王左丞安禮以池州司戶參軍掌機宜文字,馮雅相好,因以書詫於王平甫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2024.09.20 대원대학교 총동문회 All rights reserved. by 충주홈페이지제작전문업체 (주)애드인소프트.